작성일 : 19-09-07 00:08
가을 누림
 글쓴이 : dowon
조회 : 3,497  

어제 이곳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요즈음 이곳 산위에는 한밤중에 청신한 풀벌레 노래는 물론, 참나무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이따금 들립니다. 구월이 되고, 가을이 영글어가는 즈음에, 무더위를 벗어난 기쁨과 시원한 바람을 맞는 설렘이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고국에서는 음력 팔월보름의 한가위 연휴(9/12-15)를 내다보면서, 이곳 11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과는 결이 다른 동네잔치 기분으로 배달겨레의 오랜 전통을 되새기고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이곳에서는 며칠 전에 노동절(Labor Day)을 지내며 일반인들은 여름철을 마감하고, 학생들은 새 학기 개교의 기쁨과 신선한 의욕으로서 다정한 활기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달 셋째주말(9/21)에는 불자들의 피크닉 파티가 야단법석처럼 실리콘벨리 센트럴파크에서 벌어지며, 넷째주말(9/28)에는 “한국의 날” 행사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좋은 시절, 동포사회에 우정을 나누고 친목을 돋우는 즐거운 잔치들이 이어져 펼쳐지니, ‘이 아니 즐기리오!’ 주중에 열심히 일하며 공부하고는 주말에 ‘레크리에이션’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들음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필요하고 바람직한 살림살이 방법일 줄 압니다.

근래 우리사회에서는 새로운 용어와 생활방식이 유행입니다. 이곳 실리콘벨리에 펼쳐지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 문명의 한 상징으로서, 빠른 속도와 쉬운 편리를 보이는 “디지털” 성향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제4차산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손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에서 대부분의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좁혀서 “지구촌” 친구들과 다방면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책을 구해보기보다 포털 검색으로 글이나 각종 음악도 마음대로 찾아 읽고 들을 수 있는 실정이며, 상점이나 은행에 가지 않고도 물품의 구입이나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멀리 있는 지인 친구들과 수시로 쉽게 연락하고 소통할 수 있으니,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필요를 별로 느끼지도 않고, 혼자서도 게임 등을 즐기며 인간관계의 번잡함을 피하는 경향이 짙어져 갑니다. 누구나 어떻게든 많이 갖고 빨리 편하게 살려는 데에 생각이 머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대조적인, 좀 적게 갖고 천천히 약간 불편해 보이지만, 조촐함에 여유를 누리는 바, 전통적 “아날로그” 식 생각과 살림살이는 구시대적 또는 후진 방식으로 치부되고, 벗어나거나 떨쳐버려야 할 것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먼 거리가 아닌 곳도 걷기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좋아하며, 천천히 스스로 밥을 지어먹기보다 만들어져 있는 음식을 쉽게 사서 먹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종이로 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산책이나 운동 또는 노동 등 몸소 하면 보람이 있을 일들도 귀찮게 여기며, 남들이 요리했거나 보여주는 소식들을 전자시설 등을 통해 쉽게 받아드리며 깊이 생각하기를 피하고, 유행을 따르려 애쓰며 매사에 안일한 대처를 일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른바 아날로그식 살림에 향수를 느끼며, 느리고 단순하게 살아감이 보다 편하게 됨은 스스로 늙어가는 자연의 섭리인 줄 압니다. 산중에서 호젓하게 천천히 많이 걷고, 되도록 적게 먹으며, 세상 다툼의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으면서, 옛 성현의 살림살이를 음미하고 공감하며 나름대로 누려보는 여유의 가을을 맞고 싶군요. 도반님들도 가끔 조용히 홀로 앉아 독서와 명상의 시간도 갖고, 동양과 서양 정신을 아우르며, 전통과 현대 및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명, 로컬과 글로벌 문화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하여, 조화와 균형 있게, 이 찬란한 가을을 시원하고 알차게 잘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성에서, 진월 두손모음


관리자 19-09-07 16:22
 
 
 

Total 303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3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1) dowon 09-15 2743
202 가을 누림 (1) dowon 09-07 3498
201 노동절 파티 (1) dowon 09-03 2378
200 래익 타호 산책 (1) dowon 08-30 2610
199 광복절 백중절 아침에 (1) dowon 08-15 2427
198 입추절 (1) dowon 08-10 2419
197 팔월을 맞으며 (1) dowon 08-02 2608
196 달 걸음 (1) dowon 07-22 2544
195 수련과 성숙의 계절 (1) dowon 07-05 2223
194 7.4. 기념 (1) dowon 07-05 1974
193 S.F. 한국일보 기자의 고성 르포 (1) dowon 06-16 2054
192 6.15. 아침에 (1) dowon 06-16 2084
191 현충일에 (1) dowon 06-07 1907
190 도의 명적 선사 추모 (1) dowon 06-05 1800
189 한미수교137주년 기념 (2) dowon 05-27 1823
188 고성에 돌아와서 (2) dowon 05-24 1755
187 서울 대각사에서 (1) dowon 05-19 1694
186 방콕에서(동영상) (2) dowon 05-17 1742
185 인천공항에서 (1) dowon 05-15 1701
184 하노이 공항에서 (1) dowon 05-15 1810
183 음 사월초파일 아침에 (1) dowon 05-12 2316
182 베트남 하남에서 (3) dowon 05-11 1846
181 어버이날에 (1) dowon 05-08 1826
180 어린이날에 (1) dowon 05-07 1944
179 오월을 맞으며 (1) dowon 05-02 3523
178 어제와 오늘 (1) dowon 04-28 1865
177 법주사에 기대 (1) dowon 04-26 1739
176 지구의 날 (1) dowon 04-23 1673
175 4.19 아침에 (1) dowon 04-20 1843
174 로이스 여사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 부인) 49재 안내 (1) dowon 04-18 1942
173 4.16 세월을 기억하며 (1) dowon 04-17 1792
172 지구촌 불교인 축제 동참 준비 (1) dowon 04-02 1886
171 장인환 전명운 의거 11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1) dowon 03-25 1962
170 열반절에 즈음하여 (1) dowon 03-22 1895
169 주미한국대사와 주한미국대사 노변정담 (Fireside Chat) 행사를 … (1) dowon 03-22 1891
168 설조스님 단식정진 성취를 빌며 (1) dowon 03-13 1827
167 Mrs. Lois Lancaster (Lewis Lancaster UCB 명예교수 부인) 부고 (1) dowon 03-09 2399
166 3.1운동100주년기념식 및 중가주유적순례 (1) dowon 03-04 1822
165 3.1운동100주년-임시정부수립100주년에 (1) dowon 03-02 1851
164 보성스님을 추모하며 (1) dowon 02-25 2060
163 2019.05.12~14 유엔베삭절-하노이 개최 (1) 관리자 02-12 2037
162 서설과 봄눈 (1) dowon 02-07 2067
161 입춘과 설 (1) dowon 02-05 1972
160 고성에 돌아와서 (1) dowon 02-02 1856
159 하노이 거쳐 서울에 와서 (1) dowon 01-27 1957
158 SFO에서 (1) dowon 01-24 1886
157 대한절 보름달 감상 (1) dowon 01-22 1852
156 성도절 아침 (1) dowon 01-14 2072
155 2019 고성계획 안내 (2) dowon 01-07 1849
154 새해 인사말들과 격려의 노래 (1) dowon 01-02 1827
153 해갈이 (1) dowon 01-01 2000
152 메리크리스마스 (1) dowon 12-27 1985
151 동지절에 (1) dowon 12-23 1900
150 미국제41대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보고 추념하며 (1) dowon 12-06 2078
149 차가운 살림과 안심 (1) dowon 12-04 1854
148 섣달 초하루 (1) dowon 12-02 1802
147 엑스트레마두라 (Extremadura) 에서 (1) dowon 11-26 2160
146 소설절 동안거 (1) dowon 11-23 1967
145 일기 불순 (1) dowon 11-14 1994
144 구산선문 법문 (1) dowon 11-12 1821
143 토론토 코리아타운 (1) dowon 11-11 1835
142 큰 모임의 끝맺음 (1) dowon 11-08 1803
141 자비 만찬 (1) dowon 11-04 1971
140 URI 3rd Asian Assembly 2018 Sri Lanka (2) 관리자 11-03 1827
139 세계종교의회 (PWR) 개막 (1) dowon 11-02 1768
138 온타리오 호반 포행 (1) dowon 11-01 2037
137 토론토 대각사에서 (1) dowon 10-31 2204
136 인환 스님을 추모하며 (1) dowon 10-27 1797
135 고성에 돌아와서 (1) dowon 10-26 1831
134 만산홍엽 滿山紅葉 (1) dowon 10-24 1944
133 음력 구월보름 (1) dowon 10-23 1995
132 분주한 주말 (1) dowon 10-21 1846
131 한 가을 오후 감회와 단상 (1) dowon 10-20 2100
130 오봉산 석굴암 참배방문 (1) dowon 10-19 2191
129 묘현례 (廟見禮) 참관 (1) dowon 10-14 1958
128 하노이에서 (1) dowon 10-11 2001
127 한글날에 (1) dowon 10-09 2003
126 아시아종교연합 (URI Asia) 제3차총회 개막 (1) dowon 10-06 2025
125 스리랑카에서 (1) dowon 10-05 2064
124 개천절 아침에 (2) dowon 10-03 1869
123 캘리포니아의 보름달 (1) dowon 09-26 2055
122 2018 VESAK Massage from Ven. Dr. Jinwol Dowon (1) 관리자 09-25 1876
121 UNDV 2016 Thailand, Advice from Venerable South Korean Monk (1) 관리자 09-25 1906
120 추석절에 (1) dowon 09-24 2021
119 아유타야에서 (1) dowon 09-22 2029
118 태국출장 (1) dowon 09-21 1735
117 좁고도 너른 세상; 넓고도 좁은 세상 (1) dowon 09-17 2075
116 <고성통신> 9월차 공유 (1) dowon 09-11 2155
115 기계고장 (1) dowon 09-11 1945
114 미국 노동절 (1) dowon 09-05 1906
113 백중白衆 (1) dowon 08-26 2098
112 처서절에 (1) dowon 08-24 2061
111 칠석을 지내며 (1) dowon 08-19 2024
110 입추절 (1) dowon 08-08 2000
109 한 사과나무의 운명 (1) dowon 08-02 1934
108 시절인연 (1) dowon 08-02 2072
107 설조스님의 쾌차를 빌며 (1) dowon 07-31 2006
106 설조스님 단식의지 성취를 빌며 (1) dowon 07-15 2099
105 미국 독립기념일 (1) dowon 07-06 2040
104 진월스님 소풍가기 2018-06-14~17 (3박4일) (1) 관리자 06-24 2565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