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시절에 즈음하여
금년에는 음력 윤오월이 있어 백중 즉, 우란분절(음력 칠월 보름)을 9월5일에 맞게 됩니다. 인도에서 기후관계로 통행과 탁발이 어려운 우기를 맞아, 음력 사월 보름부터 칠월 보름까지 여름 세달 동안, 일정한 장소에 머물며 안거 수행하는 전통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이어져 왔고, 그 마지막 날을 백중 즉, 대중에게 고백하는 날로 정하여 그 전통을 지켜온 줄을 압니다. “우란분절” 또는 “백중”하면 보통 목련존자가 어머님을 구제한날로 알려져 왔고, 그 예를 본받아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부모를 구원하는데 좋은 날로 인식하고 조상천도 재와 법요의식을 시행해 온 줄 압니다. 그 배경과 사연을 좀 더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제일로 알려진 목련존자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상황을 삼매의 신통력으로 바라보니, 어머니가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로 지옥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곧 자기의 신통력으로 어머니를 구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는 부처님께 그 사정을 슬프게 사뢰고는 구제방법을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출가 수행자 (비구, 비구니) 들이 여름 안거수행을 마치는 7월 보름날에 그들에게 공양을 올리며 법요를 행하면 그 공덕으로 그대의 어머니가 구제될 수 있으리라고 목련에게 말씀하셨지요. 목련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시행하여 그의 어머니가 구제되자, 그 사연을 알게 된 대중들이 그 이후부터 그날을 우란분절(극심한 고통을 받는 이들을 구제하는 때)로 기리고, 그때에 수행을 마무리하는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고 법요를 갖는 전통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불교의 사대명절 즉, 불탄절(음 사월초파일), 출가절(음 이월초파일), 성도절(음 납월초파일), 열반절(음 이월보름)로서 부처님의 일생 중에 중요한 네 가지 기념일에 더하여, 오대명절의 하나로까지 존중되는 이 우란분절 즉, 백중은 왜 그렇게 불교인들에게 중요시 되었을까요? 소납은 이날이 자자(自恣)회를 행한 직후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며 평가합니다. 자자란 대중들이 각자와 이웃들의 과거를 함께 돌아보며 성찰하여, 만약에 어떠한 잘못이 있음이 들어나면, 즉시 당사자는 참회하고 대중의 용서를 비는 일을 가리킵니다. 아 자자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가능 하지만,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자자는 여름 안거정진이 마무리되는 칠월 보름이나 그 전날인 열나흘 밤에 거행되어 왔는데, 비록 잘못이 조금도 없었던 부처님부터 “나의 잘못이 있거든 숨김없이 말해 주시오”라고 솔선하여 대중에게 청해 물으셨다고 하며, 이어서 순차적으로 참가 대중들이 각자의 잘못을 고백하거나 묻고, 대중이 지적하면 참회하는 아름다운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자기정화 노력으로 수행자 각각은 물론, 불교의 청정승단이 유지되고 일반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음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요. 자자와 아울러, 계율을 독송하고 범계행위를 참회하는 “포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반성하며, 진정한 자자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스님들은 백중절에 승납 즉, 출가수행의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는 바, 스님들에게는 새해 설날이나 생일, 또는 학교의 학기말 종강일 같은 특별한 느낌을 갖습니다. 아울러 이날을 ‘해제일’이라하여, 석달 안거 시작 때에 하는 결제 즉, 수행도량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풀고, 수행의 결과를 세상에 나누는 바, 만행을 떠날 수 있는 날로서, 또는 다른 곳의 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등,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겐 새로운 견문과 체험에 대한 기대감도 클 줄 압니다. 얼마나 뜻 깊고 좋은 날입니까!
소납은 작년부터 캘리포니아 리버모아 산중에 조그만 아란야를 만들며 혼자 살아온 까닭에, 상황에 따라 주변의 사찰 법회와 행사에 동참해 왔지만, 여법한 자자로 백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봄에 이곳 북가주에 승가회가 새로 결성되었기로, 이번 해제일 뒤에 회원 스님들과 함께 모여 자자의 기회를 가져보려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즈음 현실을 감안하여,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독자대중과 나름대로 통신자자를 시도해 봄도 그 뜻을 되새기며 기리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출가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불교교단의 일원으로서 불교 발전을 위해 우리 다 같이 자자로 탁마하며 서로의 수행에 이바지 하도록 시도해 봅시다. 먼저 발제자인 소납부터 고백하렵니다. 큰 자비로 헤아려 주시기를 삼가 청합니다.
저는 비구로서, 지난세월 본분에 맞는 신구의 삼업 살림살이를 잘 해왔는지 돌아보면, 완벽하였다고 할 자신이 없습니다. 1974년 비구계와 보살계 즉, 구족계를 수지한 이후부터 1980년까지는 산중에서 참선수행에 매진하였고 대중과 자자를 해 왔기로 별 과오가 없었다고 확신하지만, 그 이후 세상에 회향한다고 일반사회 속에 들어가, 주로 대학에서 연구하고 교육하기 35년, 얼마나 여법한 비구행과 보살행을 하여 왔는지 반성해 보면,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방편으로 적응한다고 하였지만, 불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줄 알고, 송구한 마음으로 참회합니다. 독자 도반들께서 저의 잘못을 보셨거나 아시거든 숨김없이 지적해 주십시오. 개인적으로나 (jinwollee@gmail.com) 공개적으로 (이 지면을 통해서) 일깨워 주시고, 충고 조언하시면, 그 모든 잘못을 참회 드리며 각성하고 새롭게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한국식 세속 나이로 칠순을 맞고, 출가한지 50주년과 비구 된지 44주년을 맞게 되는 차제에, 다시 산중으로 회향하여 청빈하게 살아가며,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고결한 비구의 살림살이를 가꾸어 나가도록 하렵니다. 더욱 탐진치 삼독심을 비우도록 노력하고, 전법포교에 원력을 키우며, 부처님의 후예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소납이 소속되어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의 공적인 지위에 있는 소임자들, 특히 비구로 보이는 이들이 저지른 비구답지 못한 처사와 잘못들에 대하여도 나름대로 깊이 사죄와 참회를 드립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부끄러운 사례를 보며, 사실여부를 떠나 도덕과 윤리적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의 잘못을 경책하고 바로잡지 못한 책임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통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불의와 부당한 처사를 보고 들으며 바로잡지 못한 소납의 무능과 부덕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정신적 행복과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멸시와 불신 속에 걱정과 실망을 주는 비불교적 인사들의 무책임과 무능을 통탄하며, 인연업과와 사필귀정을 믿고, 자신이 하는 일과 해야 되는 일에 정진할 수밖에 없음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9월과 백중시절에 즈음하여,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크신 은혜를 새삼 되새기며 감사하고, 삼보와 수행자를 여법하게 공경하며 공덕을 쌓는 기회를 갖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개인의 수행성취는 물론, 불교계와 종단의 발전을 위한 공적인 명제에 독자 여러분의 지혜와 자비로 관심을 가지시고, 이 지상의 자자와 탁마의 열린 법회에라도 진지한 동참이 이루어져, 불조는 물론 세상이 기뻐하는 정토를 이루는데 일조가 되기를 축원하며, 눌변을 줄입니다. 시원하고 풍성한 가을 맞으소서!
(미주현대불교 9월호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