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보원 南泉 普願
<전등록>에 전하기를: 선사는 정주鄭洲 신정新鄭 출신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당나라 지덕至德 2년에 대외산大隈山의 대혜大慧선사에게 배우다가 서른 살에 숭악嵩嶽에 가서 계를 받았다. 처음에는 계율을 공부하였고, 이어서 여러 강단에서 경론을 연찬하다가 마침내 대적 마조의 회상에 나아가서 참선수행에 전념하여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루는 대중스님들에게 죽을 돌리는데, 마조 대사가 “통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고, 선사가 “이 늙은이가 입을 다물 것이지 이 따위 말을 하는구나.” 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같이 배우는 무리가 감히 E지고 묻는 이가 없었다. 정원貞元 11년에 지양池陽에 머물면서 스스로 선제 禪齊를 짓고 30여년 동안 남전산南泉山을 내려가지 않았다. 대화大和 초년에 선성宣城의 염사廉使인 육긍陸亘 이 대사의 도풍道風을 흠모하여 산에서 내려오기를 청하면서 제자의 예를 갖추엇다. 그리하여 현묘한 진리를 크게 떨치니, 이로부터 배우는 무리들이 항상 수 백명이 넘었고, 말씀이 자자하게 퍼져서 영장郢匠 즉, 선리에 밝은 선덕禪德으로 불렸다.
선사가 어떤 때에, “강서江西의 마조는 말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만, 왕노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고 하니, 이렇게 말해도 허물이 있겠는가?” 말하니, 조주가 절을 하고 나갔다. 그러지 어떤 스님이 조주를 따라 나와서, “상좌께서 절을 하고 나오신 뜻이 무었입니까?”하고 물었다. 조주가 “그대는 화상께 가서 물어라.” 대답했다. 그 스님이 다시 올라와서 선사에게 “지금 종심從諗 상좌가 절을 한 뜻은 무었입니까?” 여쭈니, 선사가 “그는 나의 뜻을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동쪽과 서쪽 양당兩堂에서 고양이 하나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선사가 고양이를 잡고서 대중에게 외쳤다. “말할 수 있으면 고양이를 살리겠지만, 말하지 못하면 목을 베리라.”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니, 선사는 곧 목을 베었다. 때마침 조주가 밖에서 돌아왔는데, 선사가 앞의 일을 들어 이야기 하니, 조주는 신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나아갔다. 선사가 이를 보고, “아까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구했을 텐데...” 말하였다. 어느 때에 조주가 선사에게 “도는 사물 밖이 아니고, 사물 밖은 도가 아닌데, 무엇이 사물 밖의 도입니까?” 여쭈니, 선사가 문뜩 때렸다. 조주가 방망이를 잡고서, “이후로는 사람을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하니, 선사가 “용과 뱀은 가리기 쉽지만, 납자는 속이기 어렵구나.”라고 말했다.
선사가 세상을 뜨려 할 때에 제일 상좌가 “화상께서 세상을 뜨신 (百年) 뒤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물으니, 선사가 “산 밑으로 가서 한 마리 검은 암소 (水牯牛)가 되련다.” 고 대답했다. 상좌가 “제가 화상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되겠습니까?” 물으니, 선사가 “그대가 나를 따르려면 모름지기 한 줄기 풀을 입에다 물어야 한다.” 고 대답했다. 대사가 병든 모양을 나타내다가, 대화大和 8년 섣달 스무닷새 첫새벽에 문인들에게, “별 그림자 등불 허깨비가 오래도 견디었다. 내가 가거나 온다고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눈을 감으니, 수명은 87세이고 법랍은 58세였다. 이듬해 봄에 탑에 안치하였다.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
마조의 회상에서 큰 뜻(普願)을 이루시고,
조주(趙州)와 철감(澈鑑) 키워 사자 무리 으뜸 되어,
천하에 왕노사(王老師) 가풍 걸림 없이 펼친 분!
마조 선사 회상의 준걸들 가운데 하나로서, 남전보원선사는 중국에서는 조주종심 선사와 육긍 대부 등을 포함한 많은 승속에 거친 제자를 두었고, 한국으로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 개창자 철감도윤 선사에게 법을 전하여 선풍을 드날리게 한 분입니다. 처음에 계율과 교학을 익혀 정통하고는 선문에 들어 일가를 이루어서 삼학을 원만하게 구족하였지만, 마침내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초월의 경지를 보이며 자유자재를 누리신 인물이시니, 후학에게 해탈의 모법을 보이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등록에서 보이는 남전선사의 여러 가지 일화와 인연들을 유념하고 참고하여 대가의 살림살이를 본 받아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