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법 진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가 허기지지 않도록 해야:
여기서는 붓다가 법문하실 때 베푸신 자비로운 방편을 보여준다. (편집자 주) 어느날, 스승 [석존]이 제타숲 (기수급고독원) 향실 안에 좌정하고 계실 때, 여명에 세상을 관찰하시다가, 알라비에 사는 한 가엾은 빈자를 보셨다. 그가 도를 이룰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음을 아시고는, 따르는 오백명의 비구들을 데리고 알라비로 가셨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곧 스승님을 청하여 그들의 손님으로 맞이하였다. 그 빈자도 스승이 그곳에 오셨음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스승님의 법문을 들으려 작정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날 그가 기르는 소 한 마리가 외양간 울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그는 생각하기를, “소를 찾아야 하나, 법문을 들으러가야 하나?” 결국 그는 먼저 소를 찾고 그 다음에 법문을 들으러 가기로 결심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른 아침에 소를 찾아 나섰다.
알라비 주민들은 붓다가 주도하는 상가의 비구들을 위하여 자리를 준비하였고 음식을 공양하였는데, 식사를 마친 뒤에 스승의 발우가 거두어지면, 축복의 말씀이 있을 터였다. 그 때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르치기 위하여 온 사람이 그의 잃어버린 소를 찾기 위하여 숲속으로 멀리 갔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법문을 하지 않겠다” 하시고는 평화롭게 선정에 드셨다. 고요한 그 동안에 그 빈자는 소를 찾아서 끌고 외양간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이제 [이미 늦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도, 적어도 스승님께 참배는 하여야지.”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배고품의 고통을 억누르며, 집으로 가는 대신 즉시 스승님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스승님께 예배를 마치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그 빈자가 스승님 앞에 이르러 서 있었을 때에, 스승님은 공양물을 챙기는 이에게 말씀하기를, “비구 승가에게 공양한 것 가운데 남긴 음식이 아직 있느냐?” 물으셨고, “경배받을 분이시여, 그 [주려고 한] 음식은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습니다.” 라는 답을 들으시자, “잘 되었다, 이 빈자에게 그 음식을 제공해라” 하셨다.
그 빈자가 음식을 먹고 몸의 [배고푼] 고통이 풀리자,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졌다. 그러자 스승님은 법문을 차근차근 순서대로 설하셨고, 사성제를 가르치셨다. 법문 결론을 말씀하실 즈음에 그 빈자는 예류향의 결실을 성취하였다. 나중에 붓다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빈자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생각하시기를, “만약 그가 배고파 고통을 당하는 동안에 내가 법문을 했다면, 그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CBT 78a-b)
이상에서, 석존의 빈자 및 서민들에 대한 관심과 교화과정의 상황에 따른 연민과 자비의 배려 및 현실적 방편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공자님도 '[사람들이] 배가 불러야 예의를 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처럼, 일반인들 삶의 우선순위로 보아, 일단 생리적 불편이 없어야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을 되새기게 된다. 성실한 수행자의 "기한발도심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도에 대한 마음을 낸다)"의 경우는 보통 사람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짐작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투철한 초월적 발심과 감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예상하기 어려운 실정. 아울러, 종교의 순수성보다 영리적 접근으로, 가난하고 어려운이들에게 금전이나 물질적 제공으로 유인하고 선교하는 얄팍한 상술이 적지않은 세태에, 각각 그 동기와 목적을 되새겨 볼 일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교직자와 신도 모두, 본래 순수 교리나 수행 및 공적인 헌신 봉사보다 교리의 자의적 해석과 사적 영리 추구에 더 관심을 갖는 변질적 타락도 성찰해 보야야 하리라...